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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2/19 아침을 여는 이야기 2회 - 사랑스러운 마음의 먼지들
  2. 2010/02/18 아침을 여는 이야기 1회 - 사랑의 그리움
  3. 2010/01/09 영혼을 훔치는 도둑
  4. 2010/01/03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기
  5. 2009/03/05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며

아침을 여는 이야기 2회 - 사랑스러운 마음의 먼지들

방송국/아침을 여는 이야기 2010/02/19 00:46

어제는 트위터의 어느 친구가 좋아하는 동화책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엘리너 파존의 <보리와 임금님>이라는 동화인데요.
파존은 책으로 가득했던 다락방에서 동화를 쓰곤 했죠.
그는 그 다락방에 소복히 쌓인 먼지를 '꽃, 한숨소리, 웃음, 눈물, 고운 머리타래...'등으로 묘사했다고 합니다. 또 그 먼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곱 처녀가 일곱 개의 빗자루를 들고 50년 동안이나 계속 쓸어댔지만,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그 신전들과 꽃송이들, 왕들, 
아가씨들의 고수머리, 시인들의 한숨, 젊은 청년들과 아가씨들의 웃음 소리를 끝내 쓸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이렇게 쓸어내지 못하는 먼지들이 있나요?
일곱처녀들이 끝끝내 그 먼지들을 쓸어내지 못하였듯이, 내 마음 속의 먼지들도 어쩜 영영 청소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쩜 그걸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왠지 너무 깨끗하면 오히려 마음이 외로울 것만 같습니다.
고요히 잠든 새벽이 되면 누워있던 먼지들이 벌떡 일어나 꼭두각시 춤도 추고 눈물도 흘리고 뽀뽀도 하죠.
오히려 그 먼지들이 내 맘을 달래주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게 하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의 다락방에 있는 먼지들이 오늘은 어떤 춤을 출지 기대가 되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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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이야기 1회 - 사랑의 그리움

방송국/아침을 여는 이야기 2010/02/18 01:44

아기 울음소리가 갑자기 그리워집니다.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 경이로움과 축복은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요?
그 존재함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기뻐하고 한가득 사랑을 받았던 애기시절.
평생 그런 사랑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아쉽게도 살아가면서 아픔과 상처, 원망이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아마도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죠?

그런데, 요즘 트위터에서 만난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해요.
난 당신이 좋아요.
당신의 존재가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몰라요.
이런 말을 내가 듣고 싶어하듯이 누군가에게 먼저 하면 그 사람도 얼마나 좋아할까요.
이런 생각을 왜 미처 못해 봤는지 반성해 보게 됩니다.

오늘 하루는 가정에서나 트위터에서나 어디에서나 한아름 사랑을 나누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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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치는 도둑

칼럼/묵상 에세이 2010/01/09 00:25
하나님께서 때로 시련이나 어려운 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심을 종종 느낄 때가 있다. 최근 수차례 물건을 도둑맞으면서 계속 원망만 쌓아왔지만, 이러한 일들 속에서 내 안에 있는 이기적인 욕망과 죄악을 깨닫게 하시고, 썩어가는 육체에 집착하기 보다는 사랑과 용서를 실천함으로써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다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불과 며칠 전에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기"라는 글을 통하여, 이러한 깨달음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로부터 물건을 다시 도둑맞게 되었다. 지하실에 두었던 아내의 여행용 가방이 사라진 것이었다. 사실 한 달 전에도 내 여행용 가방이 없어진 상태였다. 결국 우리는 창고에 정기적으로 들락거리는 도둑이 있음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에도 자전거 부품을 훔쳐간 도둑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창고라니! 더구나 아욱스부르크(Augsburg)에서도 상당히 많은 물건들을 도둑맞았던 터였다. 

아무리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라지만 왜 이런 일이 계속 나에게 생기는 것일까? 나는 화가 났지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마태복음 5:38~44)을 상기시키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은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두려움은 더해만 갔다.
"지금은 그저 작은 물건을 훔쳐가는데 지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히고 해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모든 두려움은 바로 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왜 누군가가 나의 물건을 빼앗아가고 나를 해하려 드는 것을 두려워할까? 그것은 바로 육체에 대한 집착과 욕심 때문이 아닐까? 가령, 누군가가 내 물건을 빼앗가가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면, 그 물건이 내 소유라는 집착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어느 물건도 내 고유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또, 누군가의 모욕과 조롱으로 인해서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내 안에 그릇된 자만감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 육체를 해하려 하는 것을 두려워 함은 내 육체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렇듯 타인이 내 육체에 주는 피해는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면서, 정작 온갖 사악하고 더러운 생각과 행동으로 나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는 일에는 아무런 죄책감이나 분노도 느끼지 못한다. 누군가가 내 물건을 훔쳐가거나 나를 모욕할 때는 그에게 큰 분노를 느끼면서, 돌아서서는 여인의 육체를 탐닉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누군가를 깔보고 무시하며 양심을 속이는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곤 한다. 이 얼마나 교만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인가! 

타인이 아무리 내 육체를 해하더라도 그들은 내 영혼에 털끝만큼도 손상을 입힐 수 없다. 내 영혼을 더럽히고 망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 자신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 빼앗아가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바로 나 자신이 내 영혼에 저지르는 폭력이 아닐까?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저 나를 모욕하고 조롱했던 사람, 내 모든 것을 앗아간 원수, 내 인생을 망쳐놓은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대단한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나 자신의 영혼에 가하였던 지난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던 풍성한 복과 은혜에 감사하지는 못하고 도리어 내 재산이라고 여기고 물질적인 욕심에 사로잡혔던 지난 날, 여인을 그저 내 욕망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지난 날, 선한 척 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거짓말과 사악한 행동을 하는데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던 시간들... 나 역시 다른 이에게 얼마나 많은 해를 입혔으며 내 영혼을 수도 없이 때리고 상처를 입혔는지 모른다.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함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 18:35)"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그가 없었다면 평생 내 죄를 참으로 회개하지 못하였을 것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원수야말로 나의 큰 은인이 아닐 수 없다.

진정 나의 교만과 정욕, 그릇된 자만심, 하나님의 은혜를 몰랐던 지난 날들을 진정 회개하자. 뜨거운 회개의 눈물로부터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샘솟는 그런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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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기

칼럼/묵상 에세이 2010/01/03 20:53
2010년 경인년을 가족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새해에는 우리 가족, 이웃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 특히 가난과 정신적 빈곤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큰 축복을 주시기를 기원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 날이 되는 자정 0시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와 아내도 그 순간을 조용히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0시가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 벨이 사정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아내가 수화기를 받으니, 어느 독일인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새해 복 많이 받아요"라고 말했다. 인사는 고마웠지만, 아기가 잠을 자고 있는 늦은 시간에 요란스럽게 하는 것이 조금 불쾌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새벽 2시까지 계속 벨이 울리는 것이었다. 다른 집에도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2시까지 계속 벨을 울리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뿐만 아니다. 다음 날 밖에 나가보니, 내 자전거의 안장은 부서져 있고, 바퀴의 바람은 빠져 있고 자전거에 부착된 바구니도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 누군가가 자전거의 바람을 빼 놓고 간 것은 5개월만에 3번째다. 이상한 것은 주위에 놓인 다른 사람의 자전거는 멀쩡하고 내 자전거만 그런 일을 계속 당한다는 것이다. 내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 새해 둘째날 밤에는 위층에 사는 젊은이들이 친구들을 초대해서 새벽 12시까지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쿵광쿵광 하는 소리가 너무 심해서, 올라가서 소리를 줄여달라고 부탁하였다. 잠시 잦아드는가 싶더니 다시 시끄럽게 하는 것 아닌가? 다시 올라가서 똑똑 두드리니 이젠 문도 열지 않았다. 계속 두드리니, "또 중국인이 왔군"이란 말이 들리며 문이 열렸다. "소리가 너무 큽니다. 조심해 주세요"라고 말하니 그제서야 알겠다고 말하고 음악을 껐다. 하지만 여전히 왁자지껄 하는 소리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왜 두 번이나 주의를 주었는데도 무시하고 그렇게 떠들썩대는 것일까?

비록 직접적인 단서는 없지만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아시아인을 골탕먹이려는 의도적인 행동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크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웃 독일인들에 대한 분노감에 사로잡혀 나도 이들에게 똑같이 복수할까도 생각해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당신도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말거예요"라는 아내의 만류에 마음을 접었다. 복수라는 유치한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이웃 독일인들이 아시아인을 조롱하려는 의도로 일부러 우리에게 그러한 불쾌한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미움으로 대하고 똑같이 복수하겠다는 태도로 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님께서 "네 하나님을 경외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잦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엿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태복음 6:39~45)

먼저 나는 그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내 물건을 훔쳐가거나 나를 조롱하더라도, 그들을 한 형제처럼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조롱과 고문 속에서도 그들을 용서하고 십자가에 못박힌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다. 악을 악으로 갚기 보다 악을 선으로 갚는 자가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더 나아가 그러한 억울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세상의 많은 이들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먹을 음식과 집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들, 전쟁의 공포 속에서 떨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세계 도처에 많이 있다. 자전거 하나 망가졌다고 투정부리기보다 고통받는 이웃들을 걱정하는 넓은 마음이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국제 아동봉사단체인 Reaching Hearts for Kids의 설립자이자 운영자인 나의 존경하는 친구 Norma Nashed씨는 병환으로 고생하면서도 크리스마스 기간 중에 외롭게 지내는 고아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라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노력 속에서 세상은 더욱 밝아지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2010년은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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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며

칼럼/세상 이야기 2009/03/05 23:16
개인적으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신 이후로, 뉴스나 신문에서는 아직도 그 분에 대한 기사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왜 그렇게 종파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그리워하고 깊은 존경심을 느끼는 것일까?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다른 종교에 열린 자세를 지녔다고 한다. 오늘 그러한 기사를 읽게 되어 여기 소개해 보려 한다. 내가 봤던 기사는 구중서 가톨릭문화연구원장이 중앙일보에 냈던 글인데, 김수환 추기경이 얼마나 타종교에 열린 태도를 지녔는지 비교적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전체 기사 보기)

2001년 도올 김용옥과 대담할 당시, 논어를 읇으면서 유교의 "천(天)"은 곧 하느님을 지칭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조상 제사도 미신이 아니라고 하면서, "부모 사후에도 계속 효를 실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신교에서 조상 제사를 여전히 미신이라고 간주하는 것에 비해 그의 견해는 (곧 천주교의 견해이지만) 상당히 진보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종교간의 대화에 적극적이었던 그의 열린 태도에 대해서 깊은 존경심을 느낀다. 나 역시 종교란 결국 하나님에게 이르는 여러 길이라고 생각한다. 종교 자체는 길일 뿐 목적이 아닌 셈이다. 길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불교, 이슬람, 심지어는 무신론자까지도 구원하고자 하시는 분이라 믿는다. 그러므로 종교를 이유로 싸우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인 것이다.

석굴암을 오랫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는 김수환 추기경... 다른 종교를 보면서 하나님을 뵐 수 있었던 그 분처럼 열린 신앙을 가졌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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