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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시가 있는 마을'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0/03/08 시가 있는 마을 7회 -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2. 2010/02/21 시가 있는 마을 6회 -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어
  3. 2010/02/16 시가 있는 마을 5회 - 첫마음
  4. 2010/02/07 시가 있는 마을 4회 - 담쟁이처럼
  5. 2009/06/14 시가 있는 마을 3회 - 작은 소망
  6. 2009/06/04 시가 있는 마을 2회 - 나도 신데렐라맨
  7. 2009/06/02 시가 있는 마을 1회 - 행복도 새로워

시가 있는 마을 7회 -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방송국/시가 있는 마을 2010/03/08 01:04


▲ 시인 백석 (출처)

안녕하세요. <시가 있는 마을>의 유원상입니다.
이제 봄이 시작되었네요. 그런데, 이상기후 때문인지 여기 독일에는 폭설이 내렸습니다. 새싹이 피고 새들이 지저귀는 따스한 날씨가 기다려지네요. 오늘은 백석의 <남신의 주유동 박시봉방>이란 시를 여러분과 나눠보려 합니다.
남신의 주유동 박시봉방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디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시가 조금 우울했죠? 
하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가슴 징하게 울려오는 한 편의 시였습니다.
저 역시 이 시의 주인공처럼 마음 속에 깊숙히 담아둔 상처를 되새김질하며, 
가슴이 매어오거나 나의 어리석음에 뜨거운 눈물이 핑 돌거나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듯 싶네요.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했던 그야말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을 생각할 때면, 나의 괴로움이 그저 내 어리석음의 당연한 결과겠거니 하고 쓴웃음을 짓곤 했죠.
아마도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적어도 한두번쯤은 있으시겠지요?
상처, 트라우마의 크고 작음은 있겠지만, 누구나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 같네요.

여러분 <엽기적인 그녀>라는 영화 잘 아실거에요. 산봉우리에 올라 그녀가 견우에게 외치는 말 유명하죠.
견우야~ 미안해.
나 정말 어쩔수가 없나봐.
난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어쩔수 없는 여잔가봐.
약혼까지 했던 사랑하던 남자친구를 잃었던 그녀. 
견우를 사랑하지만 죽은 옛 남자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끝내 떨쳐 버리기 힘들었죠.

그런 아픔 가득한 그녀를 견우는 그저 가만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죠.
아기처럼 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주제넘지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아픔을 치유해 주고 싶다고...
그런데 뮙니까. 그녀의 아픔을 치유해 주기 위한 방법은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었으니까요.
사랑하기에 헤어져야 하는 아픔. 아마 평생 잊기 힘든 아픔일 거에요.
그래서 어쩌면 견우와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가슴이 꽉 매어오거나 눈물이 핑 돌며,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쌔김질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처와 슬픔은 참으로 치유하기 어려운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 시의 주인공은 그런 슬픔과 어리석음과 외로움에 한탄해 하다가도, 눈을 맞고 외로이 꿋꿋하게 서 있는 갈매나무를 바라봅니다.
죽고 싶을 정도의 극심한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자신을 이끌어가는 더 크고 높은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갈매나무를 통해 본 것이죠.

만약 그가 이 갈매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 시는 매우 싱거울 뻔 했습니다.
갈매나무를 갈매나무 답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꿋꿋하게 서 있도록 한 차디찬 눈보라 덕분이었죠.
마찬가지로 성공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상처와 슬픔, 과거의 실패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께서 만약 극도의 슬픔과 외로움에 있으시다면, 이 시의 주인공이 했던 것처럼 갈매나무 같은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춰보는 것이 어떨까요?
내 안의 보석을 바라본다면 그 어떠한 상처와 슬픔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래도 슬픔을 이겨내기 힘드시다구요?
그러면 제가 같이 울어드리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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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마을 6회 -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어

방송국/시가 있는 마을 2010/02/21 00:51




안녕하세요. <시가 있는 마을>의 유원상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름을 갖고 계신가요? 부모님의 지어준 이름, 친구가 지어준 별명, 아빠, 엄마, 동생 등등, 아마 다 세어보면 수십가지가 될거예요.
저도 어릴 적 호섭이, 퀘스쳔맨 같은 여러가지 별명이 있었죠. 퀘스쳔맨은 수업시간에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해서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는데, 그나마 맘에 드는 별명이었죠.

오늘은 김춘수의 꽃이란 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 보려 합니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 시를 읽고 떠오르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세상에서 저를 처음 만난 부모님입니다.
앙앙 울면서 세상의 빛을 처음 본 순간 부모님은 제게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유원상.
원상태로 돌아가라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구요. ㅋㅋ 
굳이 해석을 하자면 서로 으뜸이 되자, 아니면 서로 높여주자 이런 의미로 생각해 보고 싶네요. 
그때 저는 하나의 의미가 된 거죠.
요즘 신문에 보면 태어나자마자 아기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거나 변기 안으로 넣어 죽이는 끔찍한 뉴스를 접하곤 합니다. 축복과 함께 부여받은 첫 이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네요.

다음으로 떠오르는 분은 중학교 3학년 때 김복자 담임선생님입니다.
사실 중학교 졸업 후 그 선생님과 연락을 해 본 적은 없는데요. 
제가 그 선생님을 기억하는 건, 선생님께서 저의 생각과 가능성을 인정해 주셨기 때문이죠.
저는 당시 다른 학생과는 달리 공상 속에 살았는데요. 
선생님은 그런 공상의 세계를 다 들어주시고 그런 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셨죠.
솔직히 그 선생님을 조금 사모하기도 했었던 것 같네요.
그 선생님이 제게 어떤 별명을 지어준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선생님은 제게 잊혀지지 않을 의미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사람은 지금 저의 아내와 딸입니다.
수많은 남자와 여자 속에서 단 둘이 만나 결혼해서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의미가 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신비죠.
아내와 지내면서 가끔은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쓸쓸히 홀로 지냈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봐주며 관심을 쏟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아내와 저 사이에 태어난 새로운 생명을 만난 순간. 그 아름다운 생명에게 이름을 부여했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분은 최근 트위터에서 만난 박성미 선생님입니다.
놀랍게도 생각하는 방식들이 저와 비슷한 점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저 뇌과학 연구합니다"라고 말하면, "당신 뇌나 한번 연구해 보소"라고 냉소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박 선생님은 제가 하는 생각들을 잘 이해해 주셨고 어떤 것들에는 감동을 받으실 정도였습니다.
저에게 "화이부동"이란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남의 의견과 잘 조화하되 맹목적으로 남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다 라는 의미입니다.
평생 이 이름대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이렇게 소중한 이름을 지어주신 선생님은 제게 큰 의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분 한분 떠올려보니,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리운다는 것은 곧 사랑받는다는 의미와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트위터를 하는 이유도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고 누군가로부터 의미가 되기 위한 몸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의미가 되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것. 그것만큼 우리를 기쁘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이 시를 읽자마자 일단 무작정 이름 지어주기를 시작해 봤습니다.
당장 지금 이 방송을 하는 시간에 무슨 이름을 지어줄까요? 네. 여러분에게 제 사랑을 드리는 시간 이라고 정하겠습니다.
이제 제 가족들, 이웃, 친구들 뿐만 아니라, 매 시간들, 가는 장소들마다 특별한 이름을 지어줄려고 합니다.
지금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에게도 이름을 지어주고 싶네요. "시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당신"이라구요. ㅎㅎ
저에게도 이름을 지어 주실래요? 음, 지금 떠오르는 이름은 "별헤는 밤"입니다. 그럼 다음 방송부터는 "안녕하세요. 별헤는 밤 입니다" 라고 소개할게요.

이렇게 유쾌한 시간이 다 지나갔네요. 여러분과 맺은 소중한 인연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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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마을 5회 - 첫마음

방송국/시가 있는 마을 2010/02/16 23:30

얼마 전 설날이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떡국은 드셨는지, 고향에 내려가느라 밀린 차 속에서 힘들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독일에 있어서 설날을 제대로 보내지는 못했지만, 트위터에서 친구들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부분 행복하게 보내셨겠지만, 설날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아픈 사연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그 분말고도 설날 당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총소리가 끊이질 않았죠. 한 해의 시작에 그런 아픔이 있다는 것은 아픈 일이지만, 올해의 마지막은 아름답기를 희망해 봅니다.

오늘은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이란 시를 함께 감상해 보도록 할게요.
첫마음
박노해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겨울나무로 서있는 벗들에게
 
저마다 지닌
상처 깊은 곳에
맑은 빛이 숨어 있다
 
첫마음을 잃지 말자
 
그리고 성공하자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첫마음으로
마침 지금이 겨울이라 밖에 가면 쉽게 겨울나무를 볼 수 있죠. 여러분은 겨울나무를 볼 때 무엇을 느끼시나요? 나뭇잎이 다 떨어져 보기 흉한 모습, 아니면 흰눈이 가지가지 쌓인 또다른 아름다움을 느끼질지도 몰라요.

사실 저도 겨울나무를 보며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는데요.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이란 시를 읊으면서 겨울나무에 순수와 사랑, 그런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 어떻게 겨울나무가 순수하고 사랑스럽냐구요?

박노해 시인은 먼저 겨울나무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죠.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 겨울나무로 서있는 벗들"
자신의 열매와 나뭇잎, 모든 것을 다 바친 채 헐겁고 가난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
저는 이 구절을 들은 순간, 예수님이 순간 떠올랐습니다.
세상에 큰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가시나무 면류관을 쓴 채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아낌없이 주었지만, 세상은 그 분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침을 뱉었죠.
헐벗은 모습으로 십자가에 박히셨지만, 도리어 그 모습은 어떠한 가식도 없는 순수한 사랑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은 겨울나무와 같이 보기 싫은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모르죠.
세상은 그를 똥처럼 생각하며 피해다닐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진정으로 헌신하며 아낌없이 베푸는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겨울나무는 우리 사람의 인생을 연상케도 합니다.
아무리 무성한 나뭇잎으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나무도 결국 겨울이 되면 헐벗은 모습이 되죠.
마찬가지로 아무리 행복해 보이던 사람도 결국 그 속에는 부끄러워 하는 마음, 아픔과 상처, 그리고 숨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언젠가는 이 겨울나무처럼 그러한 아픔과 비밀이 숨김없이 드러날 때가 있다는 거죠.
나의 거짓, 상처, 부끄러운 모습들이 겉으로 다 드러날 때의 부끄러움은 얼마나 심할까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더러운 때로 가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박노해 시인은 바로 그때야말로 '맑은 빛'을 보게 될 때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죄악과 상처를 깨닫고 회개할 때야말로 자기 안의 참다운 빛을 보게 된다는 거죠.

그 맑은 빛은 곧 우리의 첫 마음입니다.
우리의 첫 마음은 어땠나요? 저는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가 기억이 안나서 잘 모르겠네요.
대신에 주위의 갓 태어난 아기들을 보신 적이 있나요? 갓난아기를 보면 정말 티없이 맑고 순수하죠.
그러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바로 우리의 첫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이 표현이 음미하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의 치장과 거짓들을 다 버리고 헐벗은 모습으로 나타난 순간이야말로 우리 본연의 순수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순간임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겨울나무는 그렇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었으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헐벗은 모습으로 지금도 그렇게 서있네요.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왠지 나도 겨울나무가 되고 싶어집니다.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화이팅!

※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의 시낭독을 요청해 주신 박성미 님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있다면 언제든지 사연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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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마을 4회 - 담쟁이처럼

방송국/시가 있는 마을 2010/02/07 23:26


▲ 담쟁이 (원본 위치 by chitsol)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 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의 <담쟁이>

여러분도 아마 담쟁이를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벽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
저는 담쟁이덩굴에 뒤덮인 고려대 건물이 제일 생각나네요. 
그 건물 앞의 잔디밭에서 조용히 앉아 이런 저런 명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 생각나는 게 있어요.
군대에 있을 때 높다란 부대 울타리에 담쟁이 덩굴이 있었거든요.
그 담쟁이 덩굴을 보며 생각했죠.
"난 울타리를 못 넘어가는데 너는 잘도 넘어가는구나."

그 높은 벽을 타고 올라가 건너편 세상을 보기까지 담쟁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다른 잡초들이 높은 벽을 보며 아예 올라갈 생각도 하지 않고 땅에서 맴돌고 있는 동안,
담쟁이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그 높은 벽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올라간거죠.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그냥 땅에서 편하게 살아라, 땅에 맛있는 것도 많고 모든 게 다 있지 않니.
그 벽에 먹을게 뭐가 있다고 그 고생을 하니.
얼마나 주변 잡초들의 비웃음과 조롱에 시달렸을까요?

하지만 담쟁이들은 서로 꼭 손잡고 절망의 벽을 올라갔죠.
저 위에는 또다른 아름다운 세상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죠.

담쟁이들이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꼭 손을 잡고 있는 것 보셨나요?
혼자 가면 쉽게 쓰러지지만, 서로 손을 잡고 영양분을 주고 받으며 탄탄하게 나아가니 더 힘차게 올라갈 수 있는 거죠.

결국 담쟁이는 아무도 넘지 못한 벽을 넘고야 맙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부대 울타리 벽 너머의 세상을 보게 된 것이죠.
네. 바로 자유를 얻은거죠.

만약 여러분께서 넘기 힘든 벽이 있다고 느끼신다면,
사귀고 싶은 여자친구 또는 남자친구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기가 어렵다고 느끼신다면,
내가 추구하는 참된 가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하다면,

묵묵히 서로 손을 꼬옥 잡고 절망의 벽을 기어올라갔던 이 담쟁이 덩굴을 기억해 주세요.
혼자라구요?
네, 먼저 혼자 올라가세요.
그럼 내 손을 잡고 같이 올라가는 친구가 반드시 나타날 겁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 친구의 친구가, 또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계속 나타나 결국 그 절망의 벽을 뒤덮고 울타리 위의 세상을 보게 될 거니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 7:13~14)
절망의 벽 앞에서 좌절하지 말고 용기있게 첫발을 내딪을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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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마을 3회 - 작은 소망

방송국/시가 있는 마을 2009/06/14 20:21




내가 죽기 전
한 톨의 소금 같은 시를 써서
누군가의 마음을 
하얗게 만들 수 있을까
한 톨의 시가 세상을
다 구원하진 못해도
사나운 눈길을 순하게 만드는
작은 기도는 될 수 있겠지
힘들 때 잠시 웃음을 찾는
작은 위로는 될 수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여
맛있는 소금 한 톨 찾는 중이네

- 이해인 수녀의 "작은 소망" -


누군가에게 맛있는 소금 한 톨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이해인 수녀의 <작은 소망>이라는 시를 음미하면서, 오직 나 자신의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살았던 지난날의 시간들을 반성해 본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지위에 오를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하면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보통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소망일 것이다.
  명예나 부귀는 일시적인 행복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을 초월한 영원하고 참다운 행복을 우리에게 안겨주지는 못할 것이다.

작은 소망. 이 소망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소망이다. 
  그 누군가가 내가 아는 사람일수도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그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기쁨을 주는데서 행복할 수 있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사랑은 이러한 작은 소망에서 싹트는 것일 게다. 
  다른 사람을 향한 아주 작은 소망이 더 커지고 커져서 큰 소망이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그 소망과 사랑이 전해져서, 결국 세상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복잡한 철학적 이론을 세우거나 큰 뜻을 품는 것도 좋지만, 시인과 같은 그러한 순수하고 작은 소망을 가지는 것이 하느님을 더욱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삶의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를 향한 작은 소망을 품어보는 것이 어떨까? 그 소망이 다시 내게 돌아와 내 마음에 작은 행복의 씨앗을 심게 될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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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마을 2회 - 나도 신데렐라맨

방송국/시가 있는 마을 2009/06/04 02:22



요즘 MBC에서 방영되는 "신데렐라맨"을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다. 아쉽게도 벌써 내일이 이 드라마의 마지막 회다. 20부작 정도였음 더 좋았을텐데...


동대문의 가난한 장사꾼에서 '소피아'라는 대기업 회장의 손자가 된 오대산. 만약 내가 그렇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저 그런 싸구려 인생인 줄 알았던 내가 알고보니 대기업의 고귀한 손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라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대리만족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사실 오대산 같은 싸구려 인생인데... ㅋㅋ 아! 그래도 오대산은 몸집도 좋고 잘 생기기라도 했지. 내 모습을 보아하니, 수입도 변변찮고 외모마저도 남자답지 못한 못생긴 평범한 남자에 불과하다. 아무도 거들떠도 보지 않는 그런 평범한 사람... 어찌보면 오대산보다 더 못한 처지일지도... 그런 자신이 어느 순간 대기업 사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자리로 가게 되는 비현실적인 꿈을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잠시나마 누려본 것 같다.

그런데, 설령 자신이 대기업 사장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그저 별볼일 없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일까? 동대문에서 장사꾼이었던 대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던 유진의 순수한 사랑이 참 아름답다. 돈, 학벌, 지위, 명예 이런 것보단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그러한 사랑을 받는 것... 이것이야말로 어느 순간 대기업 사장의 아들이 되는 것보다 세상에서 가장 누려볼 수 있는 더 짜릿하고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한 순수한 사랑을 하면서도 동시에 신데렐라맨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니 어떻게???
나도 잘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사실인 걸 어떡하겠는가. 그건 바로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이다. 대기업 사장이나 대통령보다 더 높은 사람이 바로 하느님이다. 대기업 사장의 아들 딸이 고귀해 보인다면, 하느님의 아들 딸은 얼마나 더 고귀하고 소중하겠는가?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 딸이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마치 오대산처럼 말이다. 원래 몰랐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그것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고 싸구려 인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매우 많다. 사실 바로 나 자신부터 그러하다! "나도 알아. 내가 하느님의 자녀란 것을... 그런데 나를 보니 그저 한심하게만 느껴지네. 이 세상에 별로 쓸모없는 존재인 것 같아." 이런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내가 하나님의 자녀란 걸 진심으로 믿지 않는 게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바로 하나님의 고귀한 아들 또는 딸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고 받아들인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한번 오대산의 말을 들어보자. "그 자식(준희)이 되보니까, 고아원 9개씩 도와주는 건 아무 일도 아니더라구.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겠더라."

하나님이 내게 큰 일을 맡기시지 않겠는가? 동대문의 장사꾼이었던 오대산이 소피아를 이끌어가는 큰 책임을 맡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나 역시 세상을 이끌어가는 큰 일을 맡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또한, 나 자신이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소중하다고 느껴지게 될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정말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 순간부터 나의 삶은 180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싸구려 인생이 아니라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고귀한 존재, 그리고 세상을 경영하는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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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마을 1회 - 행복도 새로워

방송국/시가 있는 마을 2009/06/02 22:16




여러분은 시를 좋아하시나요? 사실 저도 하루하루의 생활에 치여 시를 읽지 못한 지 정말 오래되었네요.

작년에 이해인 수녀님의 "작은 기쁨"이란 시집을 사두고 한번도 읽어보지 못하고 있다가,
집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이 시집을 발견하였지요.
그런데 그 순간 오아시스를 발견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저에게 이 시집이 정신을 일깨워주는 영양만점의 음식이 될 거라고 확신했죠.

이제 막 시집을 읽어가려 하는데, 왠지 혼자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과 시를 읽으면서 느낀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거예요. 이것이 바로 이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된 계기랍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의 시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시는 이해인 수녀님의 "행복도 새로워"라는 시입니다.

행복도 새로워

날마다 순간마다
숨을 쉬고 살면서도
숨 쉬는 고마움을
잊고 살았네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 또한
당연히 마시는 공기처럼
늘 잊고 살았네

잊지 말자
잊지 말자
다짐을 하면서

다시 숨을 쉬고
다시 사랑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
새롭게 사랑하니
행복 또한 새롭네


소감이 어떠셨어요?
음, 정말 가슴이 뜨끔하네요. 사랑을 잊고 살았던 지난 세월들이 순식간에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군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재미없는 하루가 시작되려나?"하는 자포자기적인 심정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숨쉬는 고마움이라니요. 
만약 아침에 일어나서 "아, 오늘도 숨을 쉴 수 있는 하루가 주어져서 너무 기뻐! 이 상쾌한 공기~"라고 방긋 미소지으며 하루를 시작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당장 내일부터 시도해 봐야겠네요. 

이해인 수녀님의 말씀처럼, 사랑받고 사랑하는 일을 숨쉬는 것처럼 잊고 살았다는 반성을 해 봅니다.
누군가가 왜 나를 이해해 주지 않을까, 왜 나를 무시할까, 왜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만 가졌지요.
누군가를 이해하고, 누군가를 더 사랑하고, 또 누군가를 더 존경하는 일들이 왜 숨쉬는 것처럼 나의 일상적인 행복이 되지 못했는지...

이젠 슬픔, 좌절, 아픔, 미움보단, 사랑, 용서, 이해, 행복이 숨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상이 되었음 좋겠네요.
저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행복 속에서 다시 태어나길 기원하며, 오늘의 방송을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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