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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아침을 여는 이야기 2010/02/21 00:58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봅니다.
가슴벅찬 감동으로 하늘을 쳐다보던 시간,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시간,
방황했던 시간,
어두운 거리를 정처없이 해메던 시간들...
이문세의 <옛사랑>이란 노래가 왜 이렇게 내 마음에 파고드는 걸까요.
마지막 문구가 내 맘을 울립니다.
사랑이란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맘에 고독이 너무 넘쳐흘러
눈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위에
옛사랑 그대모습 영원속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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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시가 있는 마을 2010/02/21 00:51
안녕하세요. <시가 있는 마을>의 유원상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름을 갖고 계신가요? 부모님의 지어준 이름, 친구가 지어준 별명, 아빠, 엄마, 동생 등등, 아마 다 세어보면 수십가지가 될거예요.
저도 어릴 적 호섭이, 퀘스쳔맨 같은 여러가지 별명이 있었죠. 퀘스쳔맨은 수업시간에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해서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는데, 그나마 맘에 드는 별명이었죠.
오늘은 김춘수의 꽃이란 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 보려 합니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 시를 읽고 떠오르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세상에서 저를 처음 만난 부모님입니다.
앙앙 울면서 세상의 빛을 처음 본 순간 부모님은 제게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유원상.
원상태로 돌아가라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구요. ㅋㅋ
굳이 해석을 하자면 서로 으뜸이 되자, 아니면 서로 높여주자 이런 의미로 생각해 보고 싶네요.
그때 저는 하나의 의미가 된 거죠.
요즘 신문에 보면 태어나자마자 아기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거나 변기 안으로 넣어 죽이는 끔찍한 뉴스를 접하곤 합니다. 축복과 함께 부여받은 첫 이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네요.
다음으로 떠오르는 분은 중학교 3학년 때 김복자 담임선생님입니다.
사실 중학교 졸업 후 그 선생님과 연락을 해 본 적은 없는데요.
제가 그 선생님을 기억하는 건, 선생님께서 저의 생각과 가능성을 인정해 주셨기 때문이죠.
저는 당시 다른 학생과는 달리 공상 속에 살았는데요.
선생님은 그런 공상의 세계를 다 들어주시고 그런 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셨죠.
솔직히 그 선생님을 조금 사모하기도 했었던 것 같네요.
그 선생님이 제게 어떤 별명을 지어준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선생님은 제게 잊혀지지 않을 의미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사람은 지금 저의 아내와 딸입니다.
수많은 남자와 여자 속에서 단 둘이 만나 결혼해서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의미가 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신비죠.
아내와 지내면서 가끔은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쓸쓸히 홀로 지냈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봐주며 관심을 쏟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아내와 저 사이에 태어난 새로운 생명을 만난 순간. 그 아름다운 생명에게 이름을 부여했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분은 최근 트위터에서 만난 박성미 선생님입니다.
놀랍게도 생각하는 방식들이 저와 비슷한 점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저 뇌과학 연구합니다"라고 말하면, "당신 뇌나 한번 연구해 보소"라고 냉소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박 선생님은 제가 하는 생각들을 잘 이해해 주셨고 어떤 것들에는 감동을 받으실 정도였습니다.
저에게 "화이부동"이란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남의 의견과 잘 조화하되 맹목적으로 남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다 라는 의미입니다.
평생 이 이름대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이렇게 소중한 이름을 지어주신 선생님은 제게 큰 의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분 한분 떠올려보니,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리운다는 것은 곧 사랑받는다는 의미와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트위터를 하는 이유도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고 누군가로부터 의미가 되기 위한 몸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의미가 되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것. 그것만큼 우리를 기쁘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이 시를 읽자마자 일단 무작정 이름 지어주기를 시작해 봤습니다.
당장 지금 이 방송을 하는 시간에 무슨 이름을 지어줄까요? 네. 여러분에게 제 사랑을 드리는 시간 이라고 정하겠습니다.
이제 제 가족들, 이웃, 친구들 뿐만 아니라, 매 시간들, 가는 장소들마다 특별한 이름을 지어줄려고 합니다.
지금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에게도 이름을 지어주고 싶네요. "시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당신"이라구요. ㅎㅎ
저에게도 이름을 지어 주실래요? 음, 지금 떠오르는 이름은 "별헤는 밤"입니다. 그럼 다음 방송부터는 "안녕하세요. 별헤는 밤 입니다" 라고 소개할게요.
이렇게 유쾌한 시간이 다 지나갔네요. 여러분과 맺은 소중한 인연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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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아침을 여는 이야기 2010/02/20 01:03
오늘은 한국에 있는 딸에게 동화를 들려주고자 합니다. 엘리자베스 브라미의 <두 나무>라는 동화입니다.
사이좋은 두 나무가 있었죠.
사계절을 동고동락하며 재미있게 놀기도 했지만, 때론 누가 키 크나 시합도 하며 경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두 나무 사이에 담이 쌓이기 시작했죠.
서로를 볼 수 없게 되자 두 나무는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그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나무는 오랫동안 슬픈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나무가 큰 나무를 만나러 왔죠.
작은 나무가 큰 나무처럼 커진 거에요!
다시 만난 두 나무는 너무 기뻐하며 이제 다시는 다투지 않았답니다.
나뭇가지가 더 길게 자라 엉켜 이제 떨어지지 않게 되었죠.
이젠 그 누구도 갈라놓지 않는 아름다운 우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두 나무처럼 아름다운 사랑과 우정을 만들어가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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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아침을 여는 이야기 2010/02/19 00:46
어제는 트위터의 어느 친구가 좋아하는 동화책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엘리너 파존의 <보리와 임금님>이라는 동화인데요.
파존은 책으로 가득했던 다락방에서 동화를 쓰곤 했죠.
그는 그 다락방에 소복히 쌓인 먼지를 '꽃, 한숨소리, 웃음, 눈물, 고운 머리타래...'등으로 묘사했다고 합니다. 또 그 먼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곱 처녀가 일곱 개의 빗자루를 들고 50년 동안이나 계속 쓸어댔지만,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그 신전들과 꽃송이들, 왕들,
아가씨들의 고수머리, 시인들의 한숨, 젊은 청년들과 아가씨들의 웃음 소리를 끝내 쓸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이렇게 쓸어내지 못하는 먼지들이 있나요?
일곱처녀들이 끝끝내 그 먼지들을 쓸어내지 못하였듯이, 내 마음 속의 먼지들도 어쩜 영영 청소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쩜 그걸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왠지 너무 깨끗하면 오히려 마음이 외로울 것만 같습니다.
고요히 잠든 새벽이 되면 누워있던 먼지들이 벌떡 일어나 꼭두각시 춤도 추고 눈물도 흘리고 뽀뽀도 하죠.
오히려 그 먼지들이 내 맘을 달래주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게 하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의 다락방에 있는 먼지들이 오늘은 어떤 춤을 출지 기대가 되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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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아침을 여는 이야기 2010/02/18 01:44
아기 울음소리가 갑자기 그리워집니다.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 경이로움과 축복은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요?
그 존재함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기뻐하고 한가득 사랑을 받았던 애기시절.
평생 그런 사랑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아쉽게도 살아가면서 아픔과 상처, 원망이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아마도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죠?
그런데, 요즘 트위터에서 만난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해요.
난 당신이 좋아요.
당신의 존재가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몰라요.
이런 말을 내가 듣고 싶어하듯이 누군가에게 먼저 하면 그 사람도 얼마나 좋아할까요.
이런 생각을 왜 미처 못해 봤는지 반성해 보게 됩니다.
오늘 하루는 가정에서나 트위터에서나 어디에서나 한아름 사랑을 나누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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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시가 있는 마을 2010/02/16 23:30
얼마 전 설날이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떡국은 드셨는지, 고향에 내려가느라 밀린 차 속에서 힘들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독일에 있어서 설날을 제대로 보내지는 못했지만, 트위터에서 친구들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부분 행복하게 보내셨겠지만, 설날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아픈 사연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그 분말고도 설날 당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총소리가 끊이질 않았죠. 한 해의 시작에 그런 아픔이 있다는 것은 아픈 일이지만, 올해의 마지막은 아름답기를 희망해 봅니다.
오늘은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이란 시를 함께 감상해 보도록 할게요.
첫마음
박노해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겨울나무로 서있는 벗들에게
저마다 지닌
상처 깊은 곳에
맑은 빛이 숨어 있다
첫마음을 잃지 말자
그리고 성공하자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첫마음으로
마침 지금이 겨울이라 밖에 가면 쉽게 겨울나무를 볼 수 있죠. 여러분은 겨울나무를 볼 때 무엇을 느끼시나요? 나뭇잎이 다 떨어져 보기 흉한 모습, 아니면 흰눈이 가지가지 쌓인 또다른 아름다움을 느끼질지도 몰라요.
사실 저도 겨울나무를 보며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는데요.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이란 시를 읊으면서 겨울나무에 순수와 사랑, 그런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 어떻게 겨울나무가 순수하고 사랑스럽냐구요?
박노해 시인은 먼저 겨울나무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죠.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 겨울나무로 서있는 벗들"
자신의 열매와 나뭇잎, 모든 것을 다 바친 채 헐겁고 가난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
저는 이 구절을 들은 순간, 예수님이 순간 떠올랐습니다.
세상에 큰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가시나무 면류관을 쓴 채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아낌없이 주었지만, 세상은 그 분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침을 뱉었죠.
헐벗은 모습으로 십자가에 박히셨지만, 도리어 그 모습은 어떠한 가식도 없는 순수한 사랑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은 겨울나무와 같이 보기 싫은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모르죠.
세상은 그를 똥처럼 생각하며 피해다닐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진정으로 헌신하며 아낌없이 베푸는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겨울나무는 우리 사람의 인생을 연상케도 합니다.
아무리 무성한 나뭇잎으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나무도 결국 겨울이 되면 헐벗은 모습이 되죠.
마찬가지로 아무리 행복해 보이던 사람도 결국 그 속에는 부끄러워 하는 마음, 아픔과 상처, 그리고 숨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언젠가는 이 겨울나무처럼 그러한 아픔과 비밀이 숨김없이 드러날 때가 있다는 거죠.
나의 거짓, 상처, 부끄러운 모습들이 겉으로 다 드러날 때의 부끄러움은 얼마나 심할까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더러운 때로 가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박노해 시인은 바로 그때야말로 '맑은 빛'을 보게 될 때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죄악과 상처를 깨닫고 회개할 때야말로 자기 안의 참다운 빛을 보게 된다는 거죠.
그 맑은 빛은 곧 우리의 첫 마음입니다.
우리의 첫 마음은 어땠나요? 저는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가 기억이 안나서 잘 모르겠네요.
대신에 주위의 갓 태어난 아기들을 보신 적이 있나요? 갓난아기를 보면 정말 티없이 맑고 순수하죠.
그러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바로 우리의 첫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이 표현이 음미하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의 치장과 거짓들을 다 버리고 헐벗은 모습으로 나타난 순간이야말로 우리 본연의 순수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순간임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겨울나무는 그렇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었으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헐벗은 모습으로 지금도 그렇게 서있네요.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왠지 나도 겨울나무가 되고 싶어집니다.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화이팅!
※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의 시낭독을 요청해 주신 박성미 님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있다면 언제든지 사연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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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묵상 에세이 2010/02/16 03:03
얼마 전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2008년 10월 5일 스탠포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에서 졸업 축사로 한 연설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스티브 잡스는 애플(Apple)의 경영자로서 매킨토시, 아이폰, 맥북 등으로 세계의 IT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아이폰은 젊은이들의 필수품이라고 할만큼 우리의 일상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나는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평소 큰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그의 연설을 통해서 그의 비범함과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연설은 패배감에 잔뜩 웅크려 있던 내 정신에 불을 붙이는 연설이었다. 그는 그의 인생에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째 이야기는 "점을 잇는 것(Connecting the dots)"에 관한 것이다.
점을 잇는다는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인생의 경험과 지식의 총체들을 서로 연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것들에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등-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나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내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출처
실제로 그의 인생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그를 낳은 미혼의 부모는 그를 낳자마자 다른 부부에게 입양시켰다. 그는 대학에 갔지만,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어 대학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이 결정을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회고한다. 왜냐면, 그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생각하고 들었던 서체(Typography)에 관한 교양과목이 훗날 매킨토시(Macintosh) 컴퓨터의 아름다운 서체를 개발하는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어떠한가? 내 인생은 서로 연결될 수 없을 것만 같은 너무나 이질적인 점들로 채워져 있다. 청소년 시절에는 영국의 천체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을 존경하여 물리학과 수학에 빠져 지냈다. 하지만, 대학 시절에는 물리학의 한계를 느껴, 학업을 등한시하고 종교와 형이상학적인 진리탐구에 몰두하였다. 석사과정 동안에는 컴퓨터 비전 및 동영상 신호처리를, 지금 박사과정에서는 뉴로이미징(Neuroimaging)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이질적인 경험들이 어떻게 서로 하나로 엮일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는 말한다. "그 이질적인 경험들이 결국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하나로 연결될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라." 그렇다면, 지금 당장 그것들이 하나로 통합되지 못한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충실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질적인 점들은 하나의 점으로 점점 모일 것이다. 물론, 그 점들의 이질성(heterogeneity)이 크면 클수록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기간이 더 길어질 것이다.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나아가다 보면, (스티브 잡스의 경험에서 보는 것처럼) 그 점들의 집합이 만들어내는 창의성은 더 놀라운 결과로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 점의 수렴이 어디에 있는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그 지점은 에베레스트 산 정상처럼 너무 높고 뿌연 안개 속에 가려져 있어 내 머리 속에 명확한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고 있다. 대신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단계 나아가야 할 지점을 정하고 그것을 명확하게 머리 속에 그리는 일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love and loss)에 관한 것이다.
그는 애플이라는 회사를 창업하여 10년동안 큰 회사로 성장시켰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그는 자신을 실패자라고 여겼고 그가 느낀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여전히 나의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공에 대한 부담은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애플에서 해고된 일이 결국 인생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던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NeXT와 Pixar라는 회사를 창업하여 성공했고, 애플이 그 회사를 사들임으로써 애플로 다시 복귀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것은 두려운 시험약이었지만, 환자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나를 이끌어간 유일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이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같습니다. -출처
사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통하여 타의든 자의든 수많은 상실을 겪어야만 했다. 앞서 내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물리학자로서의 꿈을 스스로 접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 나는 어떤 민족종교를 우연히 접하게 되어 학업 마저도 등한시 하고 수년 동안 신앙활동에 몰두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회의감을 느끼고 그 종교로부터 나왔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엉망이 되어버린 대학 성적표였다. 나는 완벽한 실패자였다.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지만, 당시 나를 일으켜 세운 한가지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지나간 과거는 잊자. 대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이었다. 막노동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일자리를 열심히 알아본 결과 나는 한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의 엔지니어 경험은 연구에 대한 강한 의욕을 불러일으켰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가장 최근에 경험했던 상실은 작년의 유학 실패였다. 석사과정을 시작한 이후 유학을 추진했지만, 결혼을 하여 아기까지 낳게 되면서 유학의 꿈은 도리어 강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이미 가족과 친지들에게 유학을 준비한다고 공언한 터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겨우 독일의 어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지도교수는 내게 한 푼의 장학금도 주지 않았고 심지어 연구를 위한 컴퓨터마저도 지급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그 교수 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다시 한번 커다란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유럽에 버려진 쓰레기와 같았다. 이제 짐싸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 유럽이라는 벽이 너무나 높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 이 좌절감을 극복하게 한 생각은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니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찾아서 도전해 보자"는 것이었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느꼈던 것처럼 "성공에 대한 부담감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가벼움"으로 변화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다시 여러 군데를 지원했고, 영국, 캐나다, 독일 등지의 좋은 연구소로부터 오퍼를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높다고 느꼈던 세상의 벽이 조금씩 뚫리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는 지금 독일의 Leibniz 연구소에서 뉴로이미징을 연구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석사과정 때 했던 동영상 신호처리 및 컴퓨터 비전과는 상당히 다른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현재 연구주제는 fMRI로부터 뇌의 기능성 연결구조를 분석하는 일인데, 이는 사실상 내게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새로운 분야라서 사실 매우 망설였지만, 하면 할수록 강한 흥미를 느끼게 되고 전망이 있는 연구분야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유학 초기의 실패는 내게 새로운 분야를 도전하도록 하는 변화의 계기가 된 셈이다.
이와 같이 상실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과 변화의 계기가 된다. 앞으로 만들어 갈 나의 삶에서도 상실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 상실은 곧 다가올 새로운 시작을 의미함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마지막 이야기는 죽음(Death)에 관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 연설을 하기 1년 전 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그에게 3~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이 경험을 통하여, 그는 시간의 소중함을 더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강한 어조로 말한다.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통념, 즉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출처
얼마나 내 가슴을 저미게 하는 말인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용기가 없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부모님, 가족 부양에 책임을 다하기를 바라는 아내 등 주위의 강한 기대와 시선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의 궁극적인 관심은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것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기대를 먼저 충족시켜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론 나 자신이 진정 하고 싶어하는 것을 못하는 것에 분노하기도 했고, 벗어날 수 없는 고삐에 매여있는 소처럼 좌절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의 외침은 잔뜩 웅크리고 있던 내 마음에 강한 경고가 되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 그는 진정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좋은 방법은 내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상상해 보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할까?" 그리고 여러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는 것으로 이어질 때, 나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출처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었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 과연 지금 하는 일- 즉 연구활동을 계속 했을까? 사실 연구활동 자체만 생각한다면 "아니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의 연설은 오히려 그 대답을 "예스"라고 바꾸라고 말하고 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여러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훌륭한 관계에서 처럼, 그것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출처
아직 훌륭한 일을 찾지 못했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함으로써 결국은 가장 훌륭한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이 연구활동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속에서 내 인생의 점들이 궁극적으로 모이는 수렴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바로 죽기 직전까지 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하는 연구활동이 아니라 궁극적인 수렴을 향해 나아가는 살아있는 연구활동이 되어야 한다.
물론, 죽을 때까지 그 수렴점을 결국 찾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내 모든 힘을 다하여 그 수렴점을 향하여 나아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그 길을 향하여 내 모든 것을 다하는 그런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온 이질적인 점들이 먼 훗날 또는 가까운 훗날 퍼즐처럼 하나로 맞춰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질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그 맞추어진 조각들이 결국 다음 의문을 설명하는 그림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왜 존재하며 나는 어디로 가는가
우주는 무엇이며 우주는 왜 존재하며 우주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보도록 권해주신 와이즈만 영재교육 연구소 초등과학팀장 박성미( @cherrytree519) 님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박성미님은 제자들로부터 퇴임 기념 콘서트를 헌정받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갖고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 아름다운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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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묵상 에세이 2010/02/08 00:23
어제 와이즈만 영재과학 연구소에서 초등과학팀장으로 일하시는 박성미( cherrytree519)님과 트위터에서 비폭력(Nonviolence)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가치관이 공격받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 비폭력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폭력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소중한 대화였습니다. 또, 좋은 교사가 되려는 아름다운 꿈을 지닌 박성미씨를 만나게 된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나: 전도를 위해서라면 폭력도 마지않던 기독교. 이를 비판했던 톨스토이가 교회로부터 파면당했지만, 그 정신이 간디에게 영감을 주어 비폭력 저항이란 결실을 맺게 된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http://bit.ly/bHbomw
Park: 유원상님, 비폭력에 대한 글 읽었어요. 저는 영화 '아바타'의 전투씬 보며 폭력과 비폭력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나를 내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 만약 누군가 내 가족이나 조국을 해하려 든다면 폭력을 써서라도 막아야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폭력을 쓰는 건 어떤 경우에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Park: 저는 그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답니다. 가족을 위해, 종교적 신념을 위해, 그 둘이 다른 걸까요?
나: 가족을 위해 폭력을 쓰는 것은 인간적인 과오로 끝날 수 있죠. 하지만 종교적 신념, 즉 하느님의 이름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기만적이며 양심과 하느님을 해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Park: 저는 영화 아바타 본 후 비폭력에 매우 큰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이상하게도, 웹에서 사전을 찾아 보았는데, '비폭력'을 검색해 보니 '아힘사'라는 단어가 뜨더군요.
나: 아힘사(Ahimsa)는 간디가 영국의 제국주의에 대해 비폭력 저항운동을 하면서 유명해진 용어라고 알고 있어요.
Park: 그 설명 중 재미있었던 것은 (폭력을 행사할 때) 상대방의 정신적 진보를 방해하며, 그것이 나에게 업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었답니다. 육체적 위해 뿐 아니라, 정신적 진보 역시 방해하며 그것이 내게 되돌아 온다.
가치관이 충돌될 때 사람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폭력의 행사이죠. 제가 같다고 본 것은..가치관의 충돌이라는 점 그리고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랍니다.
나: 비폭력이 좋다는 건 알지만 생활에서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억울한 일에 대한 분노 등이 마음에 남아 날카롭게 되기도 하구요. 결국 내 마음 하나 다스리기도 어렵더라구요.
Park: 원상님에게는 종교가 매우 큰 가치인 것 같아 보여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런데 재미있는 건 십자군 전쟁처럼 원상님과 어쩌면 똑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였으나, .행동은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이죠. 재미있지 않나요?
나: 진정한 신앙은 결코 폭력으로 나타날 수 없다는 분명한 믿음을 갖고 있어요. 십자군 전쟁이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보이는 폭력적 신앙은 이기주의일 뿐 참다운 겸손과 사랑은 없죠. 진정한 신앙은 사랑이 아닐는지...
Park: 원상님이 분노한 그들. 종교적 신념 때문에 폭력을 사용한 그들도 원상님과 같은 고백을 한다면, 받아들이실 수 있나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우리 곁에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성경의 한 구절인데 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저는 이 말을 여러 번 곱씹고 음미해 본답니다. 정말 사랑이 가장 중요?
나: 저에겐 사랑이 가장 소중한 가치로 다가오네요. 그런데 정말이지 어려운 일입니다. 누군가가 종교적 믿음으로 내 가족을 해한다면, 내가 과연 그들을 진정 사랑할 수 있을지...
Park: 영화 잔다르크를 앞부분까지 보았는데.. 그 중 소녀 잔다르크가 영국군이 자신의 언니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엄청난 눈물을 흘리며 소녀 잔다르크는 목사님에게 절규하죠.
'원수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이 영국군들도 제가 사랑해야 하나요?" (세부인 대사는 제 기억이 잘못되었을 수 있어요.) 아.. 저는 그 대목에서 정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 이후 영화를 더 보지 않고 (IPTV라서 중간까지만 보았다가 이어 보기가 가능해서) 잔다르크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합일, 신부님께 들을 말씀과 성경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겪게 되는 혼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 잔다르크의 절규하는 장면, 상상만해도 눈물이 나네요. 그럼에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 예수님의 복음이죠.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죽을 수 있다면 참된 신앙인 것 같아요.
Park: 제가 왜 이토록 비폭력에 관심이 많은가하면, 제겐 가치의 충돌 일어날 때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서 생긴 모든 것이 폭력이라고 보여지는데, 제가 아주 자주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거대한 가치관의 충돌이 발생했는데, 저는 지금 거대한 폭력을 행사하기 직전 상태인지로 모르겠어요. 저와 가치관이 다른 분들에게. 그래서 여러 가지 생각하게 되네요. 생각이 아닌 기도가 필요한 단계?
나: 가치관의 충돌이 생길 때 해결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폭력에 의하지 않고도 해결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Park: 물론 제가 십자군처럼 물리적 폭력을 쓰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말의 폭력, 사고의 폭력을 제가 많이 쓰게 될까봐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요. 루이 암스트롱과 같은 미소로 저와 가치관이 다른 그분들을 감쌀 수는 없는걸까요.
Tolerance, 관용, 포용.. 제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그것인 듯 해요.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그 분들 생각을 내 생각과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열린 마음으로 듣고 싶은데 그것이 힘들어서요.
나: 관용, 포용, 정말 쉽지 않죠. 저도 사실 종교적 신념이 달라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있거든요. 당장 나에게 손해가 온다고 생각하니 자존심도 상하고 그러더군요.
Park: 원상님.. 진지하게 대화 나누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가치관과 가치관의 충돌. 정말 여러 군데에서 목격하게 되고 겪게 되는 일이죠. 많은 생각하게 되네요.
나: 성미님과 대화하면서 저도 반성하게 되네요. 먼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서 시작해야 할텐데요.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는 성경말씀이 생각나네요. (마5:24)
Park: 한 인간이 온전한 합일, 생각과 행동의 일관성 갖는다는 거 참 힘든 일이죠? 예수님은 그것 가능하단 거 보여주셨죠.
나: 예수님이 가셨던 그런 사랑의 길을 가는데 참다운 신앙이 있는 것 같아요. 혼자 가는 건 힘들지만, 진정 마음이 맞는 사람과 같이 간다면 한층 더 수월하겠죠.
Park: 어쩌면 Tolerance는 사람의 힘으로는 얻기 어려운 하나님의 선물인 것 아닐까요. 기도가 필요한 듯해요. 오늘 감사했어요.
제 꿈이 '좋은 교사잖아요." 아이들에 대해서도 더 많이 이해할수록 교육 효과가 높더라구요. 그래서 많이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그 과정에서 실수도 있지만 오늘 감사했어요.
나: 돈벌이에 급급한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져가는 요즘, 아이들을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진정 훌륭한 교사시네요. 꼭 좋은 교사가 되시길 기원할게요.
Park: 원상님도 연구 생활, 신앙 생활에서 늘 기쁨과 행복 느끼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바로 그 '좋은 교육'때문에 생긴 가치관의 충돌이라 제겐 핵심 가치 영역이어서 충돌 과정에서 제가 tolerance 잃을까봐 걱정하고 있나봐요.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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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시가 있는 마을 2010/02/07 23:26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 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의 <담쟁이>
여러분도 아마 담쟁이를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벽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
저는 담쟁이덩굴에 뒤덮인 고려대 건물이 제일 생각나네요.
그 건물 앞의 잔디밭에서 조용히 앉아 이런 저런 명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 생각나는 게 있어요.
군대에 있을 때 높다란 부대 울타리에 담쟁이 덩굴이 있었거든요.
그 담쟁이 덩굴을 보며 생각했죠.
"난 울타리를 못 넘어가는데 너는 잘도 넘어가는구나."
그 높은 벽을 타고 올라가 건너편 세상을 보기까지 담쟁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다른 잡초들이 높은 벽을 보며 아예 올라갈 생각도 하지 않고 땅에서 맴돌고 있는 동안,
담쟁이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그 높은 벽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올라간거죠.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그냥 땅에서 편하게 살아라, 땅에 맛있는 것도 많고 모든 게 다 있지 않니.
그 벽에 먹을게 뭐가 있다고 그 고생을 하니.
얼마나 주변 잡초들의 비웃음과 조롱에 시달렸을까요?
하지만 담쟁이들은 서로 꼭 손잡고 절망의 벽을 올라갔죠.
저 위에는 또다른 아름다운 세상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죠.
담쟁이들이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꼭 손을 잡고 있는 것 보셨나요?
혼자 가면 쉽게 쓰러지지만, 서로 손을 잡고 영양분을 주고 받으며 탄탄하게 나아가니 더 힘차게 올라갈 수 있는 거죠.
결국 담쟁이는 아무도 넘지 못한 벽을 넘고야 맙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부대 울타리 벽 너머의 세상을 보게 된 것이죠.
네. 바로 자유를 얻은거죠.
만약 여러분께서 넘기 힘든 벽이 있다고 느끼신다면,
사귀고 싶은 여자친구 또는 남자친구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기가 어렵다고 느끼신다면,
내가 추구하는 참된 가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하다면,
묵묵히 서로 손을 꼬옥 잡고 절망의 벽을 기어올라갔던 이 담쟁이 덩굴을 기억해 주세요.
혼자라구요?
네, 먼저 혼자 올라가세요.
그럼 내 손을 잡고 같이 올라가는 친구가 반드시 나타날 겁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 친구의 친구가, 또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계속 나타나 결국 그 절망의 벽을 뒤덮고 울타리 위의 세상을 보게 될 거니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 7:13~14)
절망의 벽 앞에서 좌절하지 말고 용기있게 첫발을 내딪을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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