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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3 나의 신앙, 나의 소망 (1)
  2. 2010/01/11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
  3. 2010/01/09 영혼을 훔치는 도둑
  4. 2010/01/03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기

나의 신앙, 나의 소망

칼럼/묵상 에세이 2010/01/23 23:10
종교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왜냐면 종교 내지는 가치관이 그 사람을 이끌어가는 궁극적인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내 가치관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신다(하느님을 지칭하는 용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알라'라고 하든 '상제'라고 하든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하나님을 믿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 분에게 순종하려는 열망이 나를 지금까지 인도해 왔다.

이러한 열망에 반하여 나의 삶은 매우 방탕했고 거짓과 죄악으로 가득했다.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죄악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왔고, 때론 하나님을 저버리고 내 욕망대로 살아가기도 했다. 다만, 그럼에도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하나님이 계셔서 흔들리고 쓰러져 가는 나의 손을 수백번이고 잡아주셨음을 나는 안다. 하나님은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나를 지금까지 인도했던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셨다. 비록 생소한 민족종교에서 헤매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내 곁에 계셔서 나를 인도하는 지팡이가 되어 주셨다.

지금 나는 예수를 믿는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며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참답게 사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예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건 아니다. 아직도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는 부족한 사람에 불과하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교회를 믿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교회는 그저 사람이 만든 단체일 뿐인 까닭이다.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이 사회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며, 역사적으로도 교회가 저지른 죄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흔히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같은 종파에 소속됨으로써 '내가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있구나' 라고 안도감을 갖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한 종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님을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나는 예수님을 믿지 교회에서 정한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교리는 사람이 만든 것이며 거기에는 아무런 생명의 가르침이 없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말한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복음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천국에 가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이것을 잘못 해석한다. 기독교인이 되지 않으면 모조리 지옥에 간다는 식으로 말한다. 천만의 말씀! 오히려 비기독교인보다 예수의 말씀을 왜곡하여 전하는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먼저 지옥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를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5~20)
내가 믿는 하나님은 성경과 예수님을 초월한 분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일진대, 어찌 그 분의 말씀이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에만 존재한단 말인가? 만약 성경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면 성경은 거짓된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전지전능한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셨지, 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나 역시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하나님을 믿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만 하나님을 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 힌두교, 천주교, 이슬람교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자연과 우주 속에서도 하나님은 존재한다. 최근 교황이 최근 인기있는 영화 <아바타>에 대하여 자연숭배사상을 조장한다고 비판하였다고 한다. 자연을 다른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참다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인가!

따라서, 불교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도 자신의 종교를 유지하면서도 예수를 믿을 수 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로 통하는 것인 까닭이다. 이슬람의 알라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는 다른 신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불교도나 이슬람교도라 하더라도 예수의 복음을 받이들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와 같이 볼진대, 어찌 '"내 종교가 옳다 당신 종교는 틀리다" 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 종교는 말이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만 말할 뿐이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내가 예수를 믿고 그 분의 제자가 된 것은 예수의 말씀만이 진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른 종교의 가르침보다 예수의 가르침이 가장 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며 그 말씀에 따라 살고자 하는 소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죄악으로부터 벗어나는 구원의 길을 알려 주셨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12~1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흔히 신앙과 직업, 일상생활을 분리해 놓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는 그저 삶의 한 부분이며, 그저 취미생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교회나 성당을 인맥을 넓히는 사교장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종교는 그저 마음의 안정을 주는 도구일 뿐 그것이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그들의 말 그대로 취미이며, 사교장이요, 정신안정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참다운 신앙은 내 머리가 되어 나를 움직이는 것이어야 한다.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하며,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내 일상생활에 방해가 될 때는 신앙을 뒤로 미뤄두고,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나 더 큰 복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만 하나님을 찾지는 않는가? (사실 내가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

예수를 영접하게 된 것은 진정 큰 축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죄악 속에서 허덕이고 있음을 고백한다. 쉬운 길은 아니지만,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를 수 있는 그런 참다운 제자가 되고 싶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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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

칼럼/묵상 에세이 2010/01/11 22:19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7:33)

하나님이 삶과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않는 삶은 몸은 살아 있으나 이미 영적으로는 죽은 시체나 다름없다. 나의 일이 있기 전에 가정이 있고, 가정이 있기 전에 세상이 있으며, 세상이 있기 전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계신 까닭이다. 아무리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함으로써, 내가 하는 모든 일과 가정이 참되고 올바르게 설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다. 먼저 나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 필요한 모든 양식과 필요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따르게 될 것이다.

오늘도 놀라운 경험을 했다. 창고문을 튼튼한 열쇠로 잠그려고 일단 임시로 자전거 열쇠를 문고리에 끼워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키를 돌려도 열쇠가 풀리지 않았다. 5분동안 씨름을 한 끝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이 열쇠가 열리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한마디 기도를 한 즉시 열쇠가 바로 스스르 풀렸다. 이럴수가! 너무나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이루어지게 해 주셨음을 믿는다. 아주 작은 일에서조차 하나님은 내 곁에 계시고 나의 작은 일까지 간섭하시며 내 삶을 인도하여 주신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얼마나 복된 것인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복된 삶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은 삶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이기도록 하는 큰 힘이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 막데부르그로 인도하셨듯이, 이 곳에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도록 인도하실 것을 굳게 믿는다.

내 온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그런 복된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를 위해서 항상 기도하는 삶이 되도록 하자. 기도야말로 하나님과 나를 연결해주는 훌륭한 통로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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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치는 도둑

칼럼/묵상 에세이 2010/01/09 00:25
하나님께서 때로 시련이나 어려운 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심을 종종 느낄 때가 있다. 최근 수차례 물건을 도둑맞으면서 계속 원망만 쌓아왔지만, 이러한 일들 속에서 내 안에 있는 이기적인 욕망과 죄악을 깨닫게 하시고, 썩어가는 육체에 집착하기 보다는 사랑과 용서를 실천함으로써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다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불과 며칠 전에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기"라는 글을 통하여, 이러한 깨달음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로부터 물건을 다시 도둑맞게 되었다. 지하실에 두었던 아내의 여행용 가방이 사라진 것이었다. 사실 한 달 전에도 내 여행용 가방이 없어진 상태였다. 결국 우리는 창고에 정기적으로 들락거리는 도둑이 있음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에도 자전거 부품을 훔쳐간 도둑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창고라니! 더구나 아욱스부르크(Augsburg)에서도 상당히 많은 물건들을 도둑맞았던 터였다. 

아무리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라지만 왜 이런 일이 계속 나에게 생기는 것일까? 나는 화가 났지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마태복음 5:38~44)을 상기시키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은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두려움은 더해만 갔다.
"지금은 그저 작은 물건을 훔쳐가는데 지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히고 해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모든 두려움은 바로 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왜 누군가가 나의 물건을 빼앗아가고 나를 해하려 드는 것을 두려워할까? 그것은 바로 육체에 대한 집착과 욕심 때문이 아닐까? 가령, 누군가가 내 물건을 빼앗가가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면, 그 물건이 내 소유라는 집착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어느 물건도 내 고유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또, 누군가의 모욕과 조롱으로 인해서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내 안에 그릇된 자만감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 육체를 해하려 하는 것을 두려워 함은 내 육체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렇듯 타인이 내 육체에 주는 피해는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면서, 정작 온갖 사악하고 더러운 생각과 행동으로 나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는 일에는 아무런 죄책감이나 분노도 느끼지 못한다. 누군가가 내 물건을 훔쳐가거나 나를 모욕할 때는 그에게 큰 분노를 느끼면서, 돌아서서는 여인의 육체를 탐닉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누군가를 깔보고 무시하며 양심을 속이는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곤 한다. 이 얼마나 교만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인가! 

타인이 아무리 내 육체를 해하더라도 그들은 내 영혼에 털끝만큼도 손상을 입힐 수 없다. 내 영혼을 더럽히고 망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 자신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 빼앗아가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바로 나 자신이 내 영혼에 저지르는 폭력이 아닐까?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저 나를 모욕하고 조롱했던 사람, 내 모든 것을 앗아간 원수, 내 인생을 망쳐놓은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대단한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나 자신의 영혼에 가하였던 지난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던 풍성한 복과 은혜에 감사하지는 못하고 도리어 내 재산이라고 여기고 물질적인 욕심에 사로잡혔던 지난 날, 여인을 그저 내 욕망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지난 날, 선한 척 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거짓말과 사악한 행동을 하는데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던 시간들... 나 역시 다른 이에게 얼마나 많은 해를 입혔으며 내 영혼을 수도 없이 때리고 상처를 입혔는지 모른다.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함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 18:35)"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그가 없었다면 평생 내 죄를 참으로 회개하지 못하였을 것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원수야말로 나의 큰 은인이 아닐 수 없다.

진정 나의 교만과 정욕, 그릇된 자만심, 하나님의 은혜를 몰랐던 지난 날들을 진정 회개하자. 뜨거운 회개의 눈물로부터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샘솟는 그런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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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기

칼럼/묵상 에세이 2010/01/03 20:53
2010년 경인년을 가족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새해에는 우리 가족, 이웃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 특히 가난과 정신적 빈곤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큰 축복을 주시기를 기원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 날이 되는 자정 0시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와 아내도 그 순간을 조용히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0시가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 벨이 사정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아내가 수화기를 받으니, 어느 독일인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새해 복 많이 받아요"라고 말했다. 인사는 고마웠지만, 아기가 잠을 자고 있는 늦은 시간에 요란스럽게 하는 것이 조금 불쾌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새벽 2시까지 계속 벨이 울리는 것이었다. 다른 집에도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2시까지 계속 벨을 울리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뿐만 아니다. 다음 날 밖에 나가보니, 내 자전거의 안장은 부서져 있고, 바퀴의 바람은 빠져 있고 자전거에 부착된 바구니도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 누군가가 자전거의 바람을 빼 놓고 간 것은 5개월만에 3번째다. 이상한 것은 주위에 놓인 다른 사람의 자전거는 멀쩡하고 내 자전거만 그런 일을 계속 당한다는 것이다. 내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 새해 둘째날 밤에는 위층에 사는 젊은이들이 친구들을 초대해서 새벽 12시까지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쿵광쿵광 하는 소리가 너무 심해서, 올라가서 소리를 줄여달라고 부탁하였다. 잠시 잦아드는가 싶더니 다시 시끄럽게 하는 것 아닌가? 다시 올라가서 똑똑 두드리니 이젠 문도 열지 않았다. 계속 두드리니, "또 중국인이 왔군"이란 말이 들리며 문이 열렸다. "소리가 너무 큽니다. 조심해 주세요"라고 말하니 그제서야 알겠다고 말하고 음악을 껐다. 하지만 여전히 왁자지껄 하는 소리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왜 두 번이나 주의를 주었는데도 무시하고 그렇게 떠들썩대는 것일까?

비록 직접적인 단서는 없지만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아시아인을 골탕먹이려는 의도적인 행동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크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웃 독일인들에 대한 분노감에 사로잡혀 나도 이들에게 똑같이 복수할까도 생각해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당신도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말거예요"라는 아내의 만류에 마음을 접었다. 복수라는 유치한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이웃 독일인들이 아시아인을 조롱하려는 의도로 일부러 우리에게 그러한 불쾌한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미움으로 대하고 똑같이 복수하겠다는 태도로 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님께서 "네 하나님을 경외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잦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엿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태복음 6:39~45)

먼저 나는 그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내 물건을 훔쳐가거나 나를 조롱하더라도, 그들을 한 형제처럼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조롱과 고문 속에서도 그들을 용서하고 십자가에 못박힌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다. 악을 악으로 갚기 보다 악을 선으로 갚는 자가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더 나아가 그러한 억울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세상의 많은 이들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먹을 음식과 집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들, 전쟁의 공포 속에서 떨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세계 도처에 많이 있다. 자전거 하나 망가졌다고 투정부리기보다 고통받는 이웃들을 걱정하는 넓은 마음이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국제 아동봉사단체인 Reaching Hearts for Kids의 설립자이자 운영자인 나의 존경하는 친구 Norma Nashed씨는 병환으로 고생하면서도 크리스마스 기간 중에 외롭게 지내는 고아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라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노력 속에서 세상은 더욱 밝아지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2010년은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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