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왜냐면 종교 내지는 가치관이 그 사람을 이끌어가는 궁극적인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내 가치관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신다(하느님을 지칭하는 용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알라'라고 하든 '상제'라고 하든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하나님을 믿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 분에게 순종하려는 열망이 나를 지금까지 인도해 왔다.
이러한 열망에 반하여 나의 삶은 매우 방탕했고 거짓과 죄악으로 가득했다.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죄악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왔고, 때론 하나님을 저버리고 내 욕망대로 살아가기도 했다. 다만, 그럼에도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하나님이 계셔서 흔들리고 쓰러져 가는 나의 손을 수백번이고 잡아주셨음을 나는 안다. 하나님은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나를 지금까지 인도했던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셨다. 비록 생소한 민족종교에서 헤매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내 곁에 계셔서 나를 인도하는 지팡이가 되어 주셨다.
지금 나는 예수를 믿는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며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참답게 사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예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건 아니다. 아직도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는 부족한 사람에 불과하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교회를 믿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교회는 그저 사람이 만든 단체일 뿐인 까닭이다.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이 사회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며, 역사적으로도 교회가 저지른 죄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흔히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같은 종파에 소속됨으로써 '내가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있구나' 라고 안도감을 갖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한 종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님을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나는 예수님을 믿지 교회에서 정한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교리는 사람이 만든 것이며 거기에는 아무런 생명의 가르침이 없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말한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복음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천국에 가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이것을 잘못 해석한다. 기독교인이 되지 않으면 모조리 지옥에 간다는 식으로 말한다. 천만의 말씀! 오히려 비기독교인보다 예수의 말씀을 왜곡하여 전하는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먼저 지옥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를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5~20)
내가 믿는 하나님은 성경과 예수님을 초월한 분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일진대, 어찌 그 분의 말씀이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에만 존재한단 말인가? 만약 성경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면 성경은 거짓된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전지전능한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셨지, 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나 역시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하나님을 믿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만 하나님을 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 힌두교, 천주교, 이슬람교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자연과 우주 속에서도 하나님은 존재한다. 최근 교황이 최근 인기있는 영화 <아바타>에 대하여 자연숭배사상을 조장한다고 비판하였다고 한다. 자연을 다른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참다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인가!
따라서, 불교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도 자신의 종교를 유지하면서도 예수를 믿을 수 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로 통하는 것인 까닭이다. 이슬람의 알라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는 다른 신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불교도나 이슬람교도라 하더라도 예수의 복음을 받이들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와 같이 볼진대, 어찌 '"내 종교가 옳다 당신 종교는 틀리다" 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 종교는 말이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만 말할 뿐이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내가 예수를 믿고 그 분의 제자가 된 것은 예수의 말씀만이 진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른 종교의 가르침보다 예수의 가르침이 가장 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며 그 말씀에 따라 살고자 하는 소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죄악으로부터 벗어나는 구원의 길을 알려 주셨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12~1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흔히 신앙과 직업, 일상생활을 분리해 놓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는 그저 삶의 한 부분이며, 그저 취미생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교회나 성당을 인맥을 넓히는 사교장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종교는 그저 마음의 안정을 주는 도구일 뿐 그것이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그들의 말 그대로 취미이며, 사교장이요, 정신안정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참다운 신앙은 내 머리가 되어 나를 움직이는 것이어야 한다.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하며,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내 일상생활에 방해가 될 때는 신앙을 뒤로 미뤄두고,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나 더 큰 복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만 하나님을 찾지는 않는가? (사실 내가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
예수를 영접하게 된 것은 진정 큰 축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죄악 속에서 허덕이고 있음을 고백한다. 쉬운 길은 아니지만,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를 수 있는 그런 참다운 제자가 되고 싶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13)